독서 관련한 나의 취미 중 하나는 카페나 가게 등에서 나눠주는 스티커나 명함을 책갈피로 쓰는 것이다. 근사한 책갈피보다 소중히 챙겨야하는 부담도 적고, 크기나 디자인도 적당하니 이쁜 경우가 많기 떄문이다. 왜 갑작스런 TMI 고백을 하냐면 오늘의 주인공을 만나게된 계기이기 때문이다.
옆동네를 들렸다가 왜인지 그냥 돌아오기에는 쓸쓸한 마음이 들어, "언젠가 가야지" 목록에 있던 독립서점에 들렸다. 나름 분위기 좋게 꾸며 놓았다. 나눠주는 스티커나 하나 있으면 챙겨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하나의 하이에나가 되어 어슬렁거리다 발견했다. 무료로 나눠준다는 표시와 훑어본 한두페이지의 느낌이 좋아 일단 가방에 넣고 매장을 둘러보았다. 독립출판한 책도 하나 구매하고 돌아왔다.
책이나 읽어볼까하는 마음으로 가방을 열어보니 새로 산책은 비닐에 싸여 정갈히 있는 것이, 차라도 한잔 준비해놓고 싹- 치워놓은 책상 앞에 정좌자세로 읽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마음가짐은 아니었기에 이 책을 집어 읽기 시작했다. 사실 이걸 책이라 불러야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책보다는 잡지 같다. 글쓴이도 여럿, 각자 글쓴주제도 다르지만 모두 출판업계 편집자란 공통점으로 모여있다. 마치 자동차잡지나 생활잡지 마냥(사실 둘중 어느것도 읽지않는다) 비슷한 공통분모를 갖는 주제지만 딱히 연관되지않는다. 이걸 무어라 불러야 할까 고민하던 찰라에 일러두기 페이지를 보았다. 일러두기의 첫문장이 "이 책은..."으로 시작하니 논란의 여지없이 책이다.
혹시 제목에 오타가 있었는데 기억나실까요? 만약 그렇다면 참으로 감사하다. 여기까지 글을 읽었으며, 그와중에도 오타가 있었음을 잊지 않았다니. 진심으로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이렇게 한명이라도 있으면 참으로 즐거울 것이다. 사실 이는 오타가 아니다. 위 책의 발행처는 출판공동체 편않. "편집자는 편집을 하지 않는다"의 약자인듯하다. 책의 서문에 편집자라는 말이 나올때면 펺집자라고 표기한다. 정말로 이 책의 편집자는 편집을 하지 않은 것일까하는 의심이 들기전에 다시 펺집자라고 적어주어 어처구니없는 오해는 하지않았다.
글쟁이들이라 그런지 다들 글을 잘썼다. 무거우면 무거운대로 가벼우면 가벼운대로 그 감칠맛이 있었다. (뭐 물론 취향에 맞지않는 글들도 있었다. 잡지의 모든 글을 정독하지는 않지않은가.) 요즘들어 일터에서의 고민이 많은데, 나와 같은 고민을 유려한 말들로 적어내었다. 뭐 꼭 업으로 글을 써야만 글을 잘아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편집자가 쓰는 글에 관련된 내용도 많이 나온다. 책의 표지, 작가설명, 광고문구 등등 많이 쓰고 고친다. 편집자와 작가. 그 둘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도 자기의 생각을 취사선택하며, 동시에 이렇게 저렇게 떼었다 붙였다 하며 편집을 하는데 편집자의 그 것과 같지 않은가. 원문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장 큰 차이일까. 그렇다면 작가라고 자신의 글이 온전히 나만의 글이라고 생각을 할까. 본인이 듣고 읽은 것의 콜라주일까. 그렇다면 오리지널리티는 뭘까라며(다행이도 테세우스의 배 까지는 가지않았다.) 술래잡기놀이를 하다가 발견했다. 그 둘의 가장 큰 차이.
책의 두번째 페이지. 제목 페이지(시리즈의 8호를 뜻하는 표시만 간단히 있으니 이걸 제목이 해야할지도 모르겠다.)를 제외하면 사실상 첫페이지다. 판형은 B6판, 표지는 아트지 250g에 먹과 별색 2도. 그 별색은 PANTONE 802C. 내지는 80g과 먹1도. 서체는 SM3견출고딕. 참 편집자들만 할만한 말들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만든 책을 보며 얼마나 궁금해 했었으면 이렇게 친절히도 적어놓았을까.
여러 글에 아트북페어 언리미티드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었다. 종종 놀러갔던 행사였다. 매대를 두고 나의 맞은 편에 있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엿들은 것 같았다. 그날의 발걸음이 매대 뒤 그들의 조울을 만들어 냈다 생각하니 괜시리 미안해졌다. 앞으로는 북페어를 가면 선뜻 둘러보지 못하게 되지는 않을까 싶지만, 북페어하는 가을이되면 어느샌가 다 까먹고 여기저기 둘러보며 갈대를 흔드는 바람이 되겠지.
어줍잖게 끝나는 알맹이 없는 그런 책들 보다 낫지않나 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 책들 마저 편집자들이 따뜻한 침대 속 시간을 야근과 맞바꾼 결과라 생각하니 방금 적은 저 단어들이 미안해진다.
올해의 결심으로 책을 많이 읽고, (어떤형태로든)많이 쓰기로 했다. 사실 그렇게 확고한 결심은 아니었다. 새해 맞이 헛소리 3대장 중 하나에 더 가까운 형태였다. 그런데 취미로 참여하고있는 동아리에서 신년결심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 말하고 나니 정말 결심이 되어버렸다. 덧붙여서 읽기뿐아니라 글도 많이 쓸거라 했더니 이렇게 독후감인지 일기인지 모를 이상한 글이라도 적게되었다. 읽은 글의 반이라도 따라갈만한 글덩이가 어쩌다라도 나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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